인정도 없는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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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23-03-04 16:02 조회1,2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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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도 없는 강아지
엊그제 불어온 찬바람에 옷을 모두 뺏긴 나목(裸木)들은 천천히 겨울잠 준비를 서두르고, 갈 곳 잃은 낙엽 몇 장 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길 한쪽 조그만 웅덩이로 들어가 조용히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리는데,
아까부터 새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계속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천천히 걸어오는데 하얀색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서더니 창문이 열리면서 “동생! 어디 다녀오는 길인가?”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마을의 선배께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세요?” “개 사료 한포 사오느라고.” “지금도 개를 키우시나요?” “아직도 세 마리가 있어!
그런데 자네는 안 키우는가?” “저는 안 키운 지 벌써 2년쯤 된 것 같은데요.” “그래! 왜 안 키우는데?” “그게 토끼나 닭 같은
다른 짐승이라면 몰라도 개는 가족과 같은 정(情)이 있기 때문에 같이 있다 어느 날 죽고 없으니 굉장히 허전하더라고요.”
“그랬어? 그러면 그건 어떻게 키우게 되었는데?” “그게 벌써 20년 전 쯤 되었을 것 같은데 웅치(熊峙)면에 있는 저의 동서 집을 갔더니
마치 어른 주먹만큼 작은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마루 위를‘통! 통! 통!’뛰어오는데 정말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너 우리 집에 가서 살자!’하고 그길로 데려왔는데 개라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주 조그만 해서 데려온 애가 차츰 크면서
예쁜 짓은 다하고 또 모르는 사람이 오면 짖어대면서 사람을 왔음을 알리기도 해 주지만 또 반대로 미운 짓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근 20년 가까이 미운 정 고운 정 함께하며 살았거든요.” “그랬어? 그러면 상당히 오랜 기간 함께 살았던 모양이네.”
“그렇지요. 그동안 새끼도 낳았는데 새끼들은 모두 분양하고 어미만 키우다 어느 날 갑자기 죽었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집에 와서 오래 함께 살았으니 그 정도면 장수한 개가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형님은 원래 개가 네 마리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원래 네 마리였는데 지난번에 한 마리가 죽었어.” “왜 죽었을까요? 혹시 무슨 병이라도 걸렸을까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 개도 자네 말처럼 우리 집에 온지 15년쯤 된 노견(老犬)인데 어느 날 부턴가 며칠째 밥을 먹지 않더라고. 그래서 ‘이상하다!
입맛이 없어서 그런가?’하고 맛있는 반찬에 따뜻한 소고기 국물까지 만들어 줬는데 한번 입만 대보고 조금 먹는 척하고는 안 먹더라고,
그러더니 그날은 많은 비가 왔는데 아침에 밥을 주려고 나가보니 비를 맞은 채 죽어있었는데 참! 불쌍하기도 하고 또 뭐랄까?
그 심정을 뭐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정말 안 좋더라고.” “그러셨겠네요. 그래도 아직 집에 세 마리나 있으니
그 개들에게 정을 붙이면 조금은 덜 서운하시겠네요.” “그렇기는 하겠지 그런데 그게 엊그제 죽은 개는 암캐였는데 죽은 암캐 옆에 있는
수캐가 자꾸 밤에‘낑~낑!’거리더라고 그래서‘개가 왜 저럴까?’하고 말았거든 그랬는데 밤에‘내 짝이 위독하다!’며
신호를 보냈던 모양이더라고.” “그런 걸 보면 동물들도 무언가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지요?” “그리고 개가 죽어 묻으려고
포장에 싸는데 그걸 보더니 자꾸 ‘우~우~우!’소리를 내는데 ‘니가 무엇을 알아 그러느냐?’생각하니 참 안타까운 마음이더라고.”
“정말 그러셨겠네요.” “그런데 웃긴 것은 바로 옆에 두 마리는 죽어버린 암캐의 새끼들이거든 그런데 그 놈들은 아무 반응 없이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어! 그래서 속으로 ‘너희들은 속이 없는 거냐? 아니면 인정이 없는 거냐?’생각하니 웃음만 나오더라고.”
우수가 지나면서 텃밭의 상추와 시금치가 예쁘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2023년 3월 4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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