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와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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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상진 작성일19-09-28 14:32 조회3,4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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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 비둘기
길을 가다 누군가 “형님! 어디 가세요?”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잘 아는 후배가 빙긋이 웃고 있
었다. “동생 오랜만일세!
지금 어디 가는 길인가?” “우체국(郵遞局)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려고요.” “그래! 몸은 건강하신
가?”
“저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건강한 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좋은 일일세! 그런데 금년에 양파 수확
은 모두 끝이 났는가?”
“저는 금년에 양파를 심지 않고 감자를 심었어요.” “그랬어? 그렇다면 올봄 가뭄 때문에 작황(作況)
이 별로 좋지 않아
가격이 형편없다고 야단이던데 자네는 어떤가?” “저는 종자(種子)를 일찍 심었거든요. 그래서 수확도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했기 때문에
값도 제대로 받았어요.” “그랬으면 정말 다행일세! 그런데 일찍 수확하는 종자가 따로 있던가?” “따
로 있는 것은 아니고
수미와 추백이라는 종자가 있는데 추백은 주로 조림용 그러니까 식당(食堂)에서 음식(飮食) 만들 때 사
용하는 것이고
수미는 쪄먹는 것인데 추백이라는 종자가 아무래도 수미 보다 생육 기간이 짧아 조금이라도 일찍 수확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감자를 쪘을 때 맛이 없다고 하지는 않던가?” “그런데 수확을 해 놓고 보면 그게 수미인지
추백인지 얼른 봐서는 잘 모르거든요.
그리고 감자를 찔 때 조금 신경 써서 찌면 맛도 차이 나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남 보다 더 일찍 수확해서
시장에 내 놓으면
조금이라도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감자를 밭에 심어놓고 멧돼지들 습격은 안 받았는
가?” “저의 밭은 산(山)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덜한데 가까이에 있는 밭들은 아무래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거든요.”
“옛날에 들은 이야기인데
회천면(會泉面)의 영감님 한 분은 경찰관들이 밤에 교통정리 할 때 사용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경광등 있
지 않은가?
그걸 밭에 설치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효과를 봤다고 하던가요?” “일 년 정도는 멧돼지들이 내
려오지 않더라고 하시는데
그 다음부터는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그러면 우리 마을에도 내년에는 그걸 한 번 설치해
보도록 해야겠네요.”
“아니 일 년밖에 효과가 없다는데 그래?” “일 년만 피해를 보지 않아도 그게 어딥니까? 그런 정보는
많이 알수록
저희들은 좋거든요.” “그러면 감자를 캐낸 밭에는 무엇을 심을 생각인가?” “지금 무슨 작물을 심어
야 할까? 생각 중에 있어요.”
“작년에는 콩을 심었다면서 수입이 떨어지던가?” “그게 아니고 그걸 심어놓으면 비둘기들이 와서 다
파먹어 버리니까요.”
“비둘기가 파먹어버리더라고? 그러면 허수아비 같은 것도 세워 봤는가?” “그런데 그게 처음에는 효과
가 있는데
며칠 지나면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조그만 허수아비를 만들어 밭 가운데 앉히고 거기에 우산을 씌
운 후
라디오를 계속해서 틀어놔 봤어요.” “그래서 무슨 효과가 있던가?” “처음에는 새들이 오지 않더니
며칠이 지나고 나니
허수아비 바로 옆에서 파먹고 있더라고요.” “누구 말을 들으니 콩 종자에 독한 냄새가 나게 해서 심어
놓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해 봤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아예 싹을 틔운
후 밭에 옮겨 심었더니
이번에는 싹을 먹지는 않은데 대가리를 모두 부러뜨려 놓았더라고요.” “그것 참! 고약한 비둘기들일
세! 그러면 무슨 대책은 없을까?”
“가만히 보니 비둘기들이 콩을 심어 놓으면 꼭 날아들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새들도 콩 심는 시기를 알
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금년에는 아무 것도 심지 않고 조금 땅을 쉬게 한 뒤 가을에 일찍 쪽파를 심으면 어떨까? 생각중
이거든요.”
금년에 유난히 많았던 태풍과 비 바람을 이겨낸 벼들이 누런 빛으로 변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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